2008년 10월 22일
Mr. 보장부수와의 이혼은 Mrs. 작품성에게 행복한 일인가?
어쩌다보니 첫 주절거림은 Mr. 보장부수에 관한 이야기가 되겠다.
왜 갑자기 보장부수가 이글루스에서 이슈화가 된거지 궁금하기는 하지만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글을 읽어보고 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 키보드를 내려놨다.
그냥 화끈하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 이혼 반대요! 정도다.
"눈에 흙이 들어가도-!"까지는 아니지만 "좀 더 고려해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말하며 조정기간 2주는 던져주고 싶은 심정이다.
좀 더 미묘한 나의 감정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보장부수는 있어야 한다. 아니다, 없애라! 라는 문제는 일단 구석에 쌓아놓는다 하더라도. 실제 보장부수를 정하고 없애는 건 출판사와 작가의 계약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까 그 입 다물라면 얌전히 다문다. 그러나 한가지 떠들떠들 하고 싶은 건. 보장부수를 없애자고 하시는 분들의 '보장부수의 제거'가 곧 '양질의 작품 양성'으로 도출되는 공식에 대한 불만정도는 입 벌려도 많이 안 혼나겠지 싶다.
보장부수를 없애자는 이야기는 시끌시끌한 이슈인만큼 꽤 이리저리 다리를 뻗어 몸을 지탱하고 있지만, 그 가운데 가장 큰 뿌리는 단연 '보장부수에서 비롯된 안일함은 작품성에 악영향을 끼친다.'라는 근거가 아닐까 한다.
이 쯤에서 제목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Mr. 보장부수와의 이혼은 Mrs. 작품성에게 행복한 일인가?"
과연 행복한 일일까? 보장부수의 존재는 작품성에게 아픈 상처에 불과할까. 발목을 잡아 끄는 덫과 같은 존재일까.
먼저 사과합니다.
보이지 않는 손씨 미안합니다. 당신은 저에게 첫인상이 나쁘셨거든요.
땅에 떨어져버린 작품성에 대해서 한탄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실로 옆에서 가만히 보고 있기 안쓰러울 정도로 불쌍한 그녀. 이 결혼은 반댈세. 그녀를 힘들게 하고 있다고 줄곧 생각한 보장부수라는 놈을 지게작대기로 두들겨 쫓아내니 훨칠하게 생긴 자유경쟁이라는 녀석이 미소를 띠우며 다가온다. 믿고 맏겨주세요. 그녀는 제가 꼭 행복하게 해주겠습니다. 나이가 좀 많아보이는 게 흠이기는 하지만 이 남자 가문 사람들 끝내주게 부자랜다. 내 자네를 믿지. 해피엔드. 해피엔드?
보장부수를 없애면 나타나게 될 자유 경쟁을 통해 작품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의견도 물론 일리는 있다. 일리는 있지만. 동감하기는 싫다.
미리 사과했다시피 속 좁은 나는 보이지 않는 손과 시장 경제를 그닥 탐탁하게 보지 않는다. 그 자식인 자유 경쟁이라는 녀석도. 그렇다고 해서 빨간 아이는 아니니 그 쪽 관련으로 화내시면 마음 아프다. 아. 빨간 악마!라고 하시면 욕 먹어야지 별 수 있나.
어쨌건. 자유 경쟁보다는 어느 정도 선의 적절한 개입이 보다 윤택한 삶을 만든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시장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면 어떻게 될까. 소비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치달아가는 건 당연하다. 그 들의 입맛과 취향에 누가 더 잘 맞추는가가 소비량으로 직결될테니. 그렇다면 그 소비자는 항상 아름답고 착한 것만을 추구할까? 거기서는 고개가 갸우뚱이다. 알다시피 일반적으로 보다 자극적이고 화려한 나쁜남자가 더 매력적인 법 아닌가.
굳이 책에서 예를 찾자면. 소위 잘 나간다는 베스트셀러나, 여타 책들 중에서. 물론 대단한 작품들도 분명 존재하지만 그보다는 대중의 입맛과 관심사에 맞춘 '팔기 위한'책들만 즐비하다. 그런게 아니라면 뛰어난 판촉문구에 매혹된 사람들이 하나둘 사다보니 매출이 오르고 매출이 오르다보니 재미있나 또 다른 사람들이 사서 보고 다람쥐 챗바퀴일 수도. 꼭 그런 책들은 한번 베스트셀러에 올라가면 1년내내 떨어지지도 않으니 이 몸은 한숨 또 한숨. 왠지 재미있을 것 같아!하며 두근거리며 구입한 모책을 분서갱유하지 않은 건 단지 나무와 내 돈에 대한 마지막 남은 제비 눈꼽만한 예의다.
뭐. 이건 다분히 취향 문제이니, 내 취향과는 상관 없는 다른 예를 들어보겠다.
결과는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찾을 수 있다. 영화랑 결혼한 녀석의 결혼생활을 살펴보면 간단하다.
이 보장부수라는 녀석은 스크린쿼터와 비슷한 입장이라 생각한다. 지키자, 없애라 말이 많은 것부터 점차 축소되고 있는 점도 그렇기는 하지만 그 취지가 비슷하다는 거다. 기본적인 매상을 보장해주어서 일단 일에 착수해볼 수 있도록 하는 마음의 고향 정도?
예술영화로 이름이 드높았던 프랑스에서 예술영화의 씨가 마르고, 수많은 다른 나라에서 영화제작률이 뚝 떨어져버린건 할리우드 영화의 작품성이 끝내주게 뛰어나서? 할리우드 감독들의 발놀림이 경이로워, 발로 찍어도 그네들 보다는 영화를 잘 만들지도 모른다. 핸드핼드도 하는데 풋핼드라고 못할소냐. 더 격하게 박진감 넘치는 액션신이 만들어질지.
사실 나. 할리우드 액션 영화 끝내주게 좋아한다. 뻥뻥터지고 마지막은 항상 해피엔딩. 후련한 기분으로 영화관을 나오면 어찌나 유쾌상쾌통쾌인지. 그래도 할리우드 영화 전부가 작품성 있다는 말은 못하겠다. 가뭄에 콩나는거 몇개빼면 스토리는 미국만세를 향해 고 스트레이트인데. 물론 나에게 그건 고민 안해도 되니 또 만만세.
그렇게 좋아하는 것이라도 분명히 말 할 수 있는 건 대중의 인기와 작품성이 항상 어깨동무를 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어쩌면 좋은 작품으로 자라날지도 모르는 어린 싹을, 작가들을 그대로 살벌한 경쟁 속으로 내던져 버리기.
고흐의 작품은 보관에 필요한 비용과 불쏘시개 감과의 경쟁에서 일찌감치 져버려 이미 그 운명을 달리 해버렸지 않을까.
# by | 2008/10/22 17:57 | 입은 떠들 뿐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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